전기차 캐즘 속 배터리 업계의 방향 전환
2025년 12월, 국내 배터리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가 체결했던 약 9조 6천억 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이 해지된 것입니다.
장기 대규모 계약이 중도에 종료되는 사례는 드물기 때문에, 이번 결정은 단순한 계약 해지를 넘어 전기차 산업 전반의 흐름 변화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번 계약 해지의 배경과 의미,
전기차 시장의 구조 변화,
그리고 국내 배터리 업계가 선택하고 있는 새로운 전략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포드의 선택, 전기차 전략 수정
이번 계약 해지는 포드 측의 통보로 이루어졌습니다.
해지된 계약 규모는 약 9조 6천억 원으로, 이는 LG에너지솔루션의 연간 매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특히 해당 계약은 2027년 이후 본격적으로 매출에 반영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중장기 성장 전략 측면에서의 영향도 불가피해졌습니다.
포드가 이런 결정을 내린 가장 큰 배경은 전기차 사업 전략의 변화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구매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종료되면서, 전기차 수요가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드는 최근 대형 전기 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의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보다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내연기관 차량 비중을 다시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전기차 투자에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판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기차 캐즘, 생각보다 길어지는 구간
이번 계약 해지는 전기차 시장이 겪고 있는 캐즘(Chasm) 현상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캐즘이란 신기술이 초기 수요층을 넘어 대중 시장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정체되는 구간을 의미합니다.
전기차는 이미 초기 시장을 넘어섰다고 평가받아 왔지만,
최근 글로벌 환경은 다시 한 번 전기차 수요에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이 종료되었고,
유럽 역시 내연기관 차량 퇴출 목표를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책 중심으로 성장해 온 전기차 시장이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셈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이미 체결한 대규모 계약조차 재검토하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주가로 바로 반영된 시장의 우려
계약 해지 소식은 곧바로 주식시장에 반영되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주가는 단기간에 큰 폭으로 하락했고,
이차전지 업종 전반이 동반 약세를 보였습니다.
LG화학, 삼성SDI, 포스코퓨처엠 등 주요 배터리 관련 종목들도 모두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차 중심 성장 모델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 업계의 대응 전략, ESS와 LFP
전기차 수요 둔화 속에서 국내 배터리 업계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분야가 바로 **에너지저장장치(ESS)**입니다.
AI 데이터센터 증가와 재생에너지 확대 흐름 속에서
북미를 중심으로 ESS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ESS용 배터리는 전기차용 배터리보다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만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 오창 공장에 ESS용 배터리 생산 라인을 준비하고 있으며,
SK온 역시 국내외 공장에서 ESS 대응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배터리 업계가 전기차 한 분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사업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리미엄 배터리의 입지 변화
한편, 이번 계약 해지는 LG에너지솔루션의 주력 제품인
프리미엄 하이니켈 배터리의 입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완성차 업체들이 중저가 전기차에 집중하면서
원가 절감이 가능한 배터리를 선호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성능·고가 배터리 중심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중장기적으로 남는 과제
이번 사태는 단기적인 계약 해지를 넘어,
배터리 산업 전반에 몇 가지 중요한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첫째, 전기차 중심 성장 전략의 한계입니다.
정책과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수요가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습니다.
둘째, 계약 안정성에 대한 재평가입니다.
과거에는 장기 공급 계약이 안정적인 미래 매출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절대적인 안전판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셋째,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필요성입니다.
ESS, 데이터센터, 산업용 배터리 등 새로운 수요처 확보가
기업 가치 방어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의 배터리 공급 계약 해지는
전기차 시장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전기차 산업의 성장 자체가 멈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속도 조절과 체질 개선이 동시에 요구되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국내 배터리 업계가 전기차 이후의 시장을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준비하느냐가
앞으로의 실적과 기업 가치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계약 해지는 위기이자 동시에 방향 전환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